<최고의 영예>는 8년간 백악관 생활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그녀의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살펴보면 가히 살인적이다. 여성의 몸으로 어떻게 다 감당해냈을지 신기하기도 했다. 한 편으론 측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이어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롤 모델이 될만하다고 생각된다.
<최고의 영예> 초반부는 아무래도 세계인 모두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사건, 곧 9.11테러 사건 이후의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과연 어떤 심경이었을까? 9.11테러 사건을 수습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을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극한의 긴장감, 분노, 충격, 두려움 등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쳤을 때를 회상한 내용을 보면 속으로는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는 모습이 그려진다.
끔찍했던 9.11테러 사건 당일과 그 후 얼마나 힘겨운 일들이 뒤따랐는지 생생하게 묘사되어있고, 부시 행정부가 패닉 상태에서 대처하던 때 콘졸리자 라이스는 이 사건의 꼭짓점에 서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힘겨운 일들이 뒤따랐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있고 이 사건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낱낱이 공개되어있다. 전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변 동료에게 들은 내용(이 전쟁이 9.11테러 때문이 아니라 석유 때문이라는..)과는 조금 달라 동의 할 수 없긴 했으나 그 당시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 한다. (정치에 쉬운 결정이 어디있겠냐만은..)
과연 콘돌리자 라이스는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달려왔는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명예와 권력이 따르겠지만 그녀가 치른 희생에는 분명히 더 큰 대의명분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 확신과 국제 사회의 안정 및 번영에 대한 강한 책임감은 높이 산다.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전쟁 부상병, 난민 캠프, 억압과 차별로 상처 받은 사람들을 지나치는 법이 없음이 묘사되는데 자신도 어린 시절에 차별을 경험했으며, 더 나아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등장할 때는 흑인 전체가 차별의 희생자였던 사실로 인한 상처를 갖고 있고, 스스로 대범함과 포용력을 키우고, 나쁜 전통을 깨뜨리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는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국무장관에 오른다. 그녀의 통찰력으로 수 많은 외교 정책을 구상했으며 적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협상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이 책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미국이 이란, 북한, 리비아와 막다른 골목까지 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펼친 활약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위기 대처 능력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돋보였고,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리 먼 곳이라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해당 국가의 요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하는 모습이 에피소드로 담겨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가안보보자관과 국무장관의 위치에서 겪은 우리나라의 세 대통령(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겨 있는데, 하나씩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한다.
(중략)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은 2001년 3월 7일로 정해졌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군사 정권이 맹위를 떨친 1980년대에는 투옥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미 정부가 적극적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는 이른바 '햇볕 정책'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면 언젠가는 북한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였다. 이러한 방침은 미-북 핵 동결 협약의 엄격한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잘 맞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김정일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일만은 피하려 했다는 견해도 있다.
(중략) 미국 정부의 관심사는 전혀 달랐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남한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국제 문제였다. 북한이 자국민을 짓밟고 방치하는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 한 사람만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미국 또한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로서 그러한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예전 정권들보다 북한 사회의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더욱 부각시켰다. 당시로서는 한국 정부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공통 관심사를 찾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 핵무기 실행을 진행한다는 말로 미중관계 및 한국과의 관계에 위기가 왔던 시절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중략) 문제는 한국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좀처럼 심중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종 반미 감정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일장연설을 하면서 한국이 중국과 미국관계의 평형 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듬해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한 성격이 드러난 사건이 또 한번 있었다. 회담을 마칠 무렵에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2005년 9월 19일에 맺은 공동 성명에 이미 포함된 것이므로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결론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노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기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시 대통령께서 한국전쟁을 이제 끝내겠다는 말씀은 안 하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약간 놀란 기색이었지만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해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도를 좀 더 명확히 밝혀주시면 좋을 텐데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황당한 표정이었다. 통역관이 놀라서 말을 멈추자 노 대통령은 통역관을 가볍게 꾸짖었따. 부시 대통령은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노 대통령은 자기가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을 벌였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취임식 때 만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중략) "북한 주민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몇 년 전 내가 만났던 정부 관료들은 혹시라도 통일이 되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분명한 난쟁이들'과 어떻게 함께 사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 대통령은 그들과 매우 대조적이었따. 우리 정부는 이미 제이 레프코위츠를 미국의 북한 인권 특사로 임명했다. (중략) 하지만 한국이 확실한 동반자 역할을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국무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노 대통령은 대북 방송을 거부해 우리에게 실망을 안겼다. 이제 38선 이북의 인권 뭄ㄴ제에 눈뜬 대통령이 한국에 등장했으므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다음 날 중국 방문 일정을 논하려고 그날 저녁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아시아 지역 자유 의제에서 이 대통령이 아주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부시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함께 일할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리나라 세 명의 대통령에 대한 에피소드와 함께 그녀와 부시의 생각, 즉 백악관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각들이 나열되어있는데, 사실 이 에피소드들에선 약간의 거부감이 생겼다. 마치 누구는 말을 잘 듣고 누구는 말을 잘 안들었다고 평가하는 것 같았으며 강대국의 입장에서 상대적인 약소국인 우리나라를 떡주무르 듯 자신이 원하는데로 주물러야만 옳다고 여기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과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논리정연하게 풀어가곤 있지만, 공감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최고의 영예>는 긴장감 넘치는 '비밀 협상'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촉즉발의 상황을 느껴볼 수 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일한 동료, 각국 정상, 외무 장관들에 대한 놀라울 만큼 과감한 평가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자서전일 뿐만 아니라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결정의 내부 인물의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지, 9.11테러 사건 이후 펼쳐진 상황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무엇인지, 왜 포틴과 가다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관련 사건들, 그리고 우리나라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지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評 하늘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