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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국제시장,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음악 등 좋은 작품을 감상하면 꼭 리뷰를 작성한다. <국제시장>을 관람하고 사실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았다. 관람하는 내내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울컥거림을 억지로 삼켜야했고, 절반 이상을 하염 없이 울었으며, 머리속을 각인하듯 흘러나오는 장면, 대사, 음악에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잠들기 전까지 12시간 넘게 멍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아는 동생에게 내 상태를 이해시키기 위해 잠깐 얘기를 꺼냈다가 또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참아야했던 그런 영화였기에 리뷰를 작성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나온다. 국제시장은 그런 영화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알아두면 좋은 역사 상식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담은 영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126분의 러닝타임동안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몸소 체험한 어르신들에게는 100%, 200%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황정민) 가족의 삶의 터전인 국제시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1963년 100: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독일 함보른 광산에 파독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1984년 막내 동생 끝순(김슬기)의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전쟁중인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파견간 이야기 등 덕수의 인생에 따라 변하는 역사적 공간과 시대적 흐름을 영화 속에 담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국제시장까지 피란오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담으려던 영화 초반의 장면들은 역사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전쟁 중, 피란은 정말 힘든 것이었구나' '가족과 헤어지는 극적인 장면은 너무 슬프구나' 정도의 공감밖에 얻지 못한게 사실이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여기저기서 어떻게 평했다더라.. 라는 카더라 통신을 주워들어보니 그렇더라.)



이는 피란 당시 극적인 상황에 대한 역사의 흐름을 영화 속에서 강의하듯 세세히 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적절한 러닝 타임을 얻어내기 위해서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윤제균 감독 또한 전쟁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극적인 상황에 대한 깊은 몰입과 공감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국제시장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알아두면 좋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오픈했다.


수능 공부를 위해 지겹도록 들었던 졸린 동영상 강의가 아닌, 무한도전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설민석 선생님의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는 강의를 통해 접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기 전, 역사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몰입하고, 공감하기 위해 보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 국제시장 관람 전, 알아두면 좋은 역사 상식 (영상)




공감, 공감, 대공감

피란 당시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던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의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떠나고, 그 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을 만난다. 둘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덕수는 또 다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전쟁중인 베트남으로 떠난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늘 되새기며, 덕수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마친다. 남동생의 대학등록금, 막내의 결혼자금, 희생은 늘 '장남'인 덕수 몫이다. 선장이 되고 싶은 그의 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대학에 합격한 뒤에도 동생을 위해 내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고, '장남'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짊어져야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했으며, 내 꿈과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가족을 위해 내 인생을 던지고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좋은 세상이 오고, 삶의 터전이었던 국제시장의 가게들이 가진 자들에게 팔려가기 시작하면서, 이유 없이 고집만 부리는 꽃분이네 주인 할아버지로, 매번 화만 내고 옛날 얘기만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뒷방 늙은이로 자식, 손주들에게 점점 인식되어간다.



'그가 포기한 꿈은 무엇인지', '그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짊어진 장남이라는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그의 가족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가족들이 그에게 해준 것은 무엇인지', '그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이산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역사 속을 살아온 분들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지', '꽃분이네를 끝까지 지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국제시장은 러닝타임 내내 '공감'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가슴 속 깊이 묻어둔 기억, 추억, 감정들을 꺼낼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두었다.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들에겐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사실 리뷰를 써보자! 라고 마음 먹었을 때는 국제시장이 관객들에게 어떤 요소로 공감을 주는지,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하려고 했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들 때문에 더욱 몰입했으므로 그런 '공감' 요소를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국제시장이 나에게 크게 와닿았던 이유는 영화 보는 내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심각히 몰입해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영화로 기억될 정도로 많이 울었다. 쉼 없이 운 것 뿐만 아니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나중에는 꺽꺽 거리는 수준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기억과 추억이 이성을 마비 시켰고, 이 감정들이 12시간이상 지속되어 너무 힘들게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 수학여행 가는 버스를 세워 '우리 손주는 멀미가 심해서 앞에 태워야 한다'며 선생님께 고집을 부려 기어코 맨 뒷자리에 있던 나를 맨 앞자리에 앉히고 내리셨던 할머니의 뒷모습, 큰집에 살게 되시면서 매번 갈 때마다 '우리 규~' 라고 하며 반겨주시던 모습, 이산가족 상봉하는 방송을 보며 하염없이 우시던 모습, 국제시장에 터전을 잡았던 할머니와 가족들의 옛 이야기들, 장남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속 덕수의 이야기들... 영화 속 이야기 중 단 하나도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감정 조절이 정말 힘들었다.



국제시장 최고! 황정민 최고!

덕수 역의 황정민은 20대부터 70대까지 연기하며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의 연기를 보며 관객들을 몰입할 수 있었고, 그가 이끌어가는 국제시장 속 이야기에 관객들은 울고 웃었다. "살아보지 못한 70대의 연기가 가장 어려웠다. 70대 몸의 움직임, 자세, 생각 등이 정확하게 습득돼야 앞의 세대를 관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국제시장 속 연기 방향을 밝힌 그의 말의 이유를 알 수 있는 연기였다.


한국전쟁을 시작해 무거운 역사를 영화 국제시장 속에 녹여야 하다보니, 다소 무거워질 수 있었지만, 윤제균 감독 특유의 묵직함 속 유머코드가 달구(오달수)와 막내 끝순(김슬기)를 통해 깨알 재미로 다가온다. 오달수를 괜히 '1억 배우'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 영화.


"미안하면 나 잘 살았지요? 그런데 나 진짜 힘들었어요" 라며 사진을 부둥켜 안고 하염 없이 울던 덕수의 영화 속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과거와 현대를 한 화면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감독의 표현력에 다시금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해, 약 한 달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예매율 2위, 관람객 평점 9점 이상을 계속해서 지키는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영화 <국제시장>. 정말정말 좋은 영화로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국제시장 (2014)

7
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장영남
정보
드라마 | 한국 | 126 분 |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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