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의 아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시간 여행, 타임머신, 타임슬립 등 SF 장르 중,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거나 미래로 먼저 가보는 설정의 영화는 꽤 많이 출시되었다.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또한 제목만 봐도 흔하디 흔한 시간 여행과 관련된 영화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시간여행자의 이야기가 아닌, '아내' 라는 제목을 붙여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와의 사랑을 그린 <시간여행자의 아내>
헨리(에릭 바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과거나 미래, 또는 특정 시점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게다가 시간 여행을 가는 것 자체도 불특정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이라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과거 혹은 미래로 불현듯 떨어지고, 그는 옷부터 찾는 흔한 좀도둑이 된다. 이것이 일상이다.
시간여행을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러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과는 사뭇다르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며, 한 번쯤 나도 저런 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간여행자의 아내>에 나오는 헨리는 시간 여행 능력은 불행함을 가져다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전달해주는 독특한 설정이다.
클레어(레이첼 맥애덤스)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편과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집 주변의 풀밭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신기한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0대 중반의 남편과 연애하고 28세의 남편에게 프로포즈를 받은 뒤, 40대 초반의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30대 초반의 남편과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갖는다.
이게 무슨 설정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시간 여행자 헨리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아내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기하면서 신비로운 남자를 평생 반려자로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를 반려자로 맞이한 이후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음에 좌절과 분노도 느끼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여자다.
매번 언제인지,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곳에 떨어져 그 누구와도 정을 쌓을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는 헨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사람이다.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헨리의 어린시절과 청년, 중년 시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헨리의 시각으로 얘기하고, 이런 모습을 현실에서 살아가며 맞이해주는 클레어의 삶에 비춰 그의 아내로써 어떤 기쁨과 어려움이 있는지 얘기해주는 영화이다.
■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행복할 수도 있지만, 힘든 점이 더 많다
이 영화는 동명의 베스트셀러(오드리 니페네거, 2003)가 원작이다. 이미 유명한 소설이었으므로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시간 여행자라는 독특한 소재로 시간을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을 그린 원작을 기억하는 많은 독자들은 영화에서도 그 감성을 충분히 보여주길 원했다.
클레어와 헨리가 처음 만나는 어린 시절 모습, 그를 평생 반려자로 생각하고 살아온 클레어가 중년의 헨리를 처음 만난 장면, 그리고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흔한 연인들과 같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예쁘고 행복한 모습을 영화 초중반에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중반까지만 본 여성 관객들은 '나도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된다면' 뭔가 스릴 있고, 극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남성 관객들 또한 내가 시간 여행자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신비로운 사랑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에 골인하면서부터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의 다툼과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점이 하나둘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소재에서 비롯된 로맨틱한 상상보다 흥미로운 건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겪는 고통이 불치병 환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곹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처지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클레어는 헨리의 시간일탈증상을 고치고 싶지만 치료는커녕 남편의 병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남편의 흔적을 아이를 통해 남기고 싶지만, 임신마저 여의치 않다.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태아가 뱃속에서부터 시간여행을 하면서 유산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현실이었다면? 이것보다 더한 불행이 없다.
결혼식을 올린 첫 날 밤, 키스와 함께 행복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던 그와 그녀, 하지만 결혼 반지와 옷을 덩그러니 남겨둔 체 헨리는 원하지 않는 시간 여행을 떠나버리고 남겨진 클레어는 결혼 반지를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거듭되는 유산에 클레어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던 40대의 헨리는 그녀의 동의 없이 정관 수술을 받고, 그 사실을 알게된 그녀와 큰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화해도 하지 못한 체 시간 여행을 또 떠나게 되고, 2주가 지난 뒤, 30대의 헨리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40대의 남편과 다퉜지만, 30대의 남편이 나타나니 웃어야 하는 상황,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때, 갑자기 사라져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녀, 갑자기 총에 맞고 쓰러져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의 모습 등 이 모든 것들이 그와 그녀의 사랑을 아름답게 이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이처럼 시간여행은 그들을 외로움의 시공간으로 빠뜨리지만, 동시에 서로 그리워하는 간절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영화 속 시간여행은 멜로 요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소재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특별한 소재에 비해 특별한 멜로 영화가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매력적인 원작 소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한 영화 속에서 모두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빠진 내용이 나오게 되고 에피소드들의 연계가 자연스레 억지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헨리가 아닌 클레어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되어야 한다. 원작 소설에서도 홀로 남겨진 클레어의 슬픔과 헨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헨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시간여행자로서의 고된 삶과 그의 사랑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를 하다보니, 어느새 클레어의 감정선이 이어져버리지 못한다. 이런 문제점이 소설을 먼저 읽고 기대했던 관객들이 아쉽다는 얘기를 하게 한 가장 큰 이유이다.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원작 소설 대비 어떤가? 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여러 아쉬움이 남긴 하겠지만, 시간여행자들의 삶, 그들의 사랑, 그들의 행복, 그들의 슬픔 등을 현실적으로 그리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 한 번쯤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사실 관람해도 크게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 그들의 알콜달콩한 모습에 부족한 연애 세포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연인과 함께 봤을 때, 미래를 그려나가고 상상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원작 소설은 영화를 보고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너무 아름답고 예쁘고 매력적인 '레이첼 맥아담스'의 팬이라면 무조건 보길 추천한다. 그녀의 연기만 보고 있어도 사실 충분히 좋은 영화다.
評. 하늘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