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프 세드, 중년의 사랑을 그리다
좋은 배우의 마지막 작품을 보면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슬픈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보게 된다. 영화 <이너프 세드>는 다행히 배우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로 영화를 접해서 다행히 집중해서 즐긴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내에서 아직 개봉을 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영화이기도 하고..
■ 이너프 세드, 중년의 사랑을 그리다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는 너무나 많다.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렵고 힘겨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거나 불가능한 조건을 이겨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너프 세드(Enough Said, 2013)은 산뜻한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로맨스로 분류해도 이상할 것 없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설정을 하고 그 속에서 사랑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 나간다.
방문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는 에바(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는 돌싱(돌아온 싱글)이다. 마사지사가 주인공이라고 하니 자칫 19금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녀는 말 그대로 순수한 마사지사다. 당지 방문해서 해줄 뿐이다.
암튼 그녀는 이혼 한 후,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마사지사를 택했고, 늘 함께 수다떠는 친구와 우연히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 곳에서 유명한 시인인 마리안(캐서린 키너)와 알버트(제임스 갠돌피니)를 만나게 되고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마리안은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지만, 역시나 돌싱이다. 파티에서 에바가 마사지사라는 것을 듣고 한 번 초대한 이후, 그녀들은 절친이 되어간다. 마리안은 그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할 말동무가 필요했고, 에바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그녀를 점점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중년의 여성이 모이면, 게다가 돌싱인 그녀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 주제로 전 남편을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다.
마리안의 전 남편은 게으르고 더럽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며 세심한 배려조차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있다. 그로 인해 돌싱인 현재가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인생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쓸쓸한 삶을 이어간다.
에바는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던 또다른 인연인 알버트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그들은 데이트도 하고 차츰 가까워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알버트 또한 돌싱이고 에바와 급격히 가까워지며 서로의 아이들과 인사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물론 사랑하고 결혼까지 해봤으며 남녀 사이에 대해서 알만큼 아는 중년이다보니 부끄러울 수도 있는 말들을 서슴 없이 내뱉고 관계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새롭게 찾아온 그들의 사랑은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급변하게 된다. 마리안의 집에서 마사지를 하던 도중 그녀 딸이라며 소개 받은 아이가 알고보니 알버트의 집에서 딸이라며 소개 받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마리안에게 들었던 온갖 단점을 안고 있던 그 남자가 자신이 현재 사랑하기 시작한 알버트라는 사실에 힘겨워하게 된다.
그 때부터 알버트에 대한 에바의 태도는 콩깍지를 벗겨진 여자가 남자를 대하는 태도를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대사 하나 표정 하나 모두 지극히 현실적이며 완벽한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황홀하기만 했던 키스의 순간을 수염 때문에 간지러워 피하게 되고, 사랑스럽다며 이해해주던 모든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트집잡게 된다.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던 알버트의 매력이 전 부인인 마리안의 평가들과 겹쳐지면서 단점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급격히 멀어지고 자신의 단점만 바라보는 에바에게 실망한 알버트는 이별을 통보하고 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너프 세드는 국내 미개봉 작품이다. 어떠한 이유인지 찾아보진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알버트역의 제임스 갠돌피니가 작년 돌연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배우로 기억 될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억될 이너프 세드는 중년간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부모의 곁을 떠나려는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 등을 현실적이면서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연인 보다는 현재 결혼한 부부가 손 잡고 보면 괜찮을 것 같은 영화 <이너프 세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좀 더 귀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評. 하늘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