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재판, 매력적인 법정 소설
처음 접한 일본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청소년이였기도 했지만 워낙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은 상당한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어린 아이답게 일본 소설 전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훗날 세월이 좀 더 지나 아무 책이나 마구 읽어도 가치관에 타격을 입지 않게 되었을 때 쯤 다시 일본 소설을 손에 들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주제로 많이 시도를 해봤으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화차라는 소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어렸을 때 느꼈던 하루키의 성적 거부감과는 다른, 소설을 전개하고 끝맺음에 있어서 나타나는 일본 소설만의 문화적인 부분이 어쩐지 매우 께름직하고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틀에 박힌 결말이지만, 선과 악이 나오는 소설에서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내용에 빠져드는 타입인지라, 권선징악이 아닌 막연한 결말을 내리는 일본 소설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들어온 원고가 아니라면 아마 자의적으로는 일본 소설을 읽지 않았을 터였다.
[파계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당장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한문으로 적혀있다! 일본 소설이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용에 한문으로 나오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재판이라 하는 법조계에서의 단어 또한 여전히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도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용을 따라잡는 것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파계는 불교에서 쓰는 단어로, 불교의 계율을 어기거나 불교를 떠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파계승이라 함은 불교에서 내친 승려나 불교를 스스로 떠난 승려를 의미한다. 그런데 파계재판은 당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여기서의 파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단어에 의미를 담아 [법을 깨뜨리고 지키지 않는다] 로 해석하는 것이 책 내용에 어울린다. 즉, 파계재판이란 일상적인 재판이 아니라 반전에 반전을 기하여 상당히 판을 뒤엎는 사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영국에서는 배심원 제도가 있어 평범한 사람들도 법에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동양은 배심원 제도가 없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다수 법에 관심이 없다.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있겠거니와 판사, 검사, 변호사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아 재판을 통해 사건을 일단락 시키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리라. 특히나 민법이냐, 가정법이냐, 행정법이냐, 형법이냐 등등에 따라 그 역할의 성향이 달라지는 것도 무지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상이 이러하다보니 사법권에 대한 불신이 매우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고 맹신 또한 달갑지 않게 되었다.
하여 2008년도에 들어서서부터는 우리나라도 참여재판이라는 것을 통해 일반인들의 배심제도를 시범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봤을 때 이 책은 앞서 얘기한 내용들을 조금씩 포괄하며 형법, 형소법에 관한 좋은 예시와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필자는 과학 수사를 공부하고 있어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책을 펼치게 되었다.
관련된 재판은 형법 기사를 다루는 한 신문기자의 눈을 통해 진행된다. 바로 이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법을 잘 모른다는 전제 하에 설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도 그러했고, 신문기자라는 직책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한 드라마로 이미 재판 과정을 선보인 적이 있다. 그 드라마에서 국선 변호사가 피고인의 변호를 맡을 때 어떻게 맡아야 하는가 하는 교과서적인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 한 명 등장을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함이 얼마나 피고인을 압박했는지, 피고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평생에 걸쳐 만들어진 성향에 입각하면 얼마나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또한 하나의 강력 범죄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과 사람들이 종합되는지, 작가는 침착하고 인간적인 어투로, 때로는 격렬하게 논리를 펼쳐나간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계속해서 증인들이 등장을 하고, 방청객의 반응이 추임새처럼 언급된다. 재판은 본디 형을 집행하기 전까지는 피고인을 고발하는 검사를 제외하면 피고인은 무죄라는 사실에 입각한다. 그래서 구형받지 않은 피고인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증인들과 방청객은 그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로 이미 범죄자 취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재판은 1960년에 행해진 것으로 서술되고 있으나 실로 이는 50년 후, 인터넷이 발달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며 상황을 판단하는 요즘 우리네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검사와 변호사의 법적 공방이 가감없는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재판장은 재판의 위엄과 엄격함을 유지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어느새 독자는 자신이 검사도 됐다가 변호사도 됐다가 피고인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따분할 수도 있는 재판의 한 과정을 피고인과 피해자의 인생사, 서로를 공격하는 빈틈없는 논리와 추리, 짙은 호소성이 버무려져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400 페이지 가량의 두터운 책장을 쉴 새 없이 넘기게 한다. 개인적으로 좀 더 마음에 들은 구성은, 한 호흡에 끊을 수 있도록 소제목이 적당한 간격으로 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소제목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소제목은 제목을 뒷받침 해주는 흥미 유발의 역할도 있지만 한 번 읽을 때 흥미의 호흡을 조절해주는 역할도 있다. 그래서 소제목의 쪽 간격은 너무 짧아서도 안되지만 너무 길면 지루한 감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그 점에 있어서 이 책의 소제목은 [제 1장], [제 2장] 하는 식으로 제목 자체로 흥미를 끌었다기보다 단순한 구분의 역할 밖에 하지 않았으나 매우 적절하게 시간과 시각처리를 했다고 느꼈다. 그것이 좀 더 책을 빠르게 읽게 하지 않았나 싶다.
단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일본사를 잘 알지 못해 드문드문 예시로 쓰여진 사건이나 일례를 길어야 세네 줄짜리 주석으로밖에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록을 표시하여 참고 자료 정도로 기재했으면 더 내용을 (사건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또한 한자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가끔 나오는 단어를 몰라서 찾아보며 읽었어야 했고 신극이라는 일본 문화도 알지 못해 찾아봐야 했던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여자란 모두 그런 존재입니까?] 여기서 ‘그런’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작가가 소설 내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사람을 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여자란 모두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드러냈다는 것이 조금 씁쓸했다. 없어도 충분히 무게감 있게 끝낼 수 있는 결말이지 않았을까.
일반적인 법정 소설들이 사건과 주변 관계를 서술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반해, 파계재판은 재판장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서술하여 그 재미를 더하는 소설이다. 과학 수사나 형법 재판에 관심 있고 특별히 스스로 정의감이 넘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푹 빠져서 읽을 만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 관계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점이 많은 소설, 파계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