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버린(The Wolverine, 2013),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
남성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영화 X맨의 주인공으로 울버린은 늘 상위에 속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비운의 사나이면서 죽는 것도 늙는 것도 자기가 원하는데로 할 수 없는 울버린. 그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해서 영화화 되어왔는데, 영화 <더 울버린>에서는 함께하던 X맨들이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아 역사를 이어가는 울버린의 미래가 그려진 작품이다.
■ 울버린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더 울버린>
X맨은 갖가지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 '울버린'은 X맨 중 가장 많은 속편이 나온 캐릭터이기도 하면서 지난 13년간, 단 한 명의 배우가 울버린을 연기한 장수 캐릭터이다. 개인적으로 히어로 중 슈퍼맨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간 참 많은 배우를 거쳐갔다. 그래서 연기나 표정 등이 조금씩 달라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울버린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마 <더 울버린>에 대한 혹평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인 것 같다. 관객들이 X맨의 <더 울버린>에게 바라는 것은 칼에 찔리면 다치고, 다리에 총을 맞으면 쩔뚝거리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어떤 타격에도 치유하고 재생하며 미친듯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포효하는 늑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울버린에 대한 새로운 에피소드인 <더 울버린>은 주위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수십년의 세월을 지내며 '울버린'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써의 삶을 살아가기 바라는 나약한 모습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 이 점만으로도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 온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준 것은 아닐까?
수 많은 히어로 중 '슈퍼맨'이 가장 좋은 이유는 가장 강하기 때문이고, 그 강함 속에 따뜻한 심장을 가져 주위 사람들을 아끼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히어로라도 약점이 있고 인간적인 약점이 있어서 그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이다. 약점이 많은 히어로는 매력이 많이 떨어져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히어로의 약점을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단지, 어떤 캐릭터가 좋아? 왜 좋아? 했을 때 답이 있을 뿐.
'울버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더 울버린>은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아쉬움이 떠오르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음을 상기할 수 있었으나 그만큼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SF, 액션물을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는 '울버린'의 휴먼 스토리에 적잖게 실망한 듯 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 장점을 느낀 나 같은 관객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평이 워낙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상황이라 기대감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부담 없이 봤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진'에 대한 악몽과 환상에 여전히 시달리는 울버린의 모습은 강한 히어로와는 상반되는 이미지이다. 로봇에 의해 치유와 재생 능력의 제한을 받게 되고, 피를 흘리고 쩔뚝거리는 모습 또한 울버린 캐릭터와는 상반된다. 독고다이라도 혼자 적진을 쳐부수고 두려움 없이 맞서는 울버린이 아닌 한 사람의 보디가드로써, 피하고 숨기만 하는 모습 또한 그간 쌓아온 이미지와 상반되는 것은 틀림 없다.
마초 같은 캐릭터에 갑자기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장을 심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과 과거의 사랑 등에서 시달리지 않고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에 '울버린'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잘 이겨낸 모습에 다시금 마초로 돌아올 그의 모습이 기대되기 까지 한다는 점은 <더 울버린>이 그렇게 심각한 망작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이유이다.
여러 평론가들의 입에서도 나온 것처럼 <더 울버린>을 찍을 당시 예산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굳이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 않더라고 그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이겨내는 과정을 그리는덴 큰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게다가 옛 사랑을 잊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여자 주인공과의 원나잇 후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삼류 러브 스토리라니..그리고 러브 호텔이라니..
울버린이 여자 주인공을 도와주기 위해 '사랑' 이란 감정으로 개연성을 만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틀만한 액션이나 눈빛, 호흡 교환이 없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키스신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많은 관객들이 당혹감을 느꼈을 것 같다.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로맨스 영화가 되었다. 게다가 옛사랑을 잊지 못하면서 다른 여자와 갑작스레 사랑에 빠지고 몸을 섞는 당혹스러운 전개라니... 이 부분이 <더 울버린>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을 살짝 떠올리게 했던 로봇 액션씬, (물론 이것도 B급 영화 수준이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을 가지게 된 '울버린'의 인간으로써의 고뇌, 더 이상 '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다 털어내고 이겨낸 후, 전사로 회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잠시 후, 에피소드인 것처럼 나왔다가 갑작스레 X맨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두 인물의 등장까지..
<더 울버린>은 아쉬움이 많이 남으면서도 X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리고 울버린의 전사다운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SF물이나 화려한 액션씬을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꽤 괜찮은 영화!
評. 하늘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