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2013), 뜨뜻미지근한 영화
한 달간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는데, 오랜만에 올라온 여친님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영화 < 관상 >을 보러 갔다. 개인적으로 배우 김혜수의 팬이기도 했고, 캐스팅을 100% 알진 못했지만, 포스터에 있는 배우들의 모습만으로도 기대감을 갖도록 만든 영화였는데, 실제 보고 나와서는 만족도 아닌 실망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영화로 기억에 남아버렸다. 그래서 영화 < 관상 > 후기도 간단 명료하게 남길 생각.
1. 우리에게 익숙한 '관상'을 주제로한 영화
영화 < 관상 >의 컨셉은 굉장히 독특하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있다는 가정하에 예부터 내려오는 관상학에 기초를 둔 영화이다. 사람이 잘 생기고 예쁜 것을 떠나 인상만으로 첫 이미지가 생성 되고 이를 바꾸는데는 3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인상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눈코입의 위치, 모양, 안색 등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운명, 성격, 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일이 바로 '관상' 이다. 과학이 발달한 현재도 관상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풍습 중 하나인 '관상'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큰 틀로 삼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천재 관상가 김내경은 산속에 칩거생활을 하고 있다가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과 아들의 안녕을 위해 한양으로 향하게 되고, 기방에서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다 어느새 역사 속으로 깊숙히 관여를 하게 된다. 관상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므로 약간은 역사적인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 < 관상 >은 이미 여러 사극 콘텐츠에서 사용된 '계유정난' (세조가 될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 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2.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만 주연인 영화 < 관상 >
이 영화의 캐스팅은 굉장히 화려하다. 관상가 김내경 역할을 맡은 송강호를 시작으로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 김종서 역의 백윤식, 건축학개론에서 친구역을 재밌게 풀쳐나갔던 조정석, 너목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이종석,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게 만든 이유였던 김혜수까지..
캐스팅된 배우들만 보면 이 영화는 선이 굵직한 영화일 것이라 예상하고 극장을 찾게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들을 다 떠나서 송강호와 백윤식, 김혜수 세 배우만으로도 굉장히 큰 기대를 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나와서 같이 본 사람들의 대부분 평이 그다지 좋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는 송강호 솔로플레이 영화라고 단정 지어도 될만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배우들은 해당 역에 어울리는 비슷비슷한 배우 누구를 데려와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비중이었다. 연기력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전개에 필요한 연기를 하는 비중이 송강호를 제외한 대부분 캐릭터는 거~의 조연급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물론 해당 캐릭터와 딱 어울리는 '관상'을 가진 배우들이 캐스팅되긴 했다. 하지만 김혜수의 역은 최근 본 모든 작품 중 가장 비중이 떨어지는 캐릭터였고, 예쁘면서 남자를 홀릴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역이었고, 그런 비중이었다. 김혜수만 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보고자 찾은 나 같은 관객에겐 굉장히 실망스러운 영화.
영화 < 관상 >은 송강호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그에 따라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으며, 구멍 많은 시나리오라 눈쌀 찌푸려지는 영화도 아니며,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해 연기력 논란이 생길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 관상 > 하면 송강호의 연기만 떠오를 것 같은 그런 영화가 되어버렸다. 90%는 송강호가 연기하고 나머지 10%를 나머지 배우끼리 나눠가진 기분.
3. '관상'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픽션 같은 영화였다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는 세조가 될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인 '계유정난'을 큰 주제로 제작된 영화이다. 이미 사극 드라마에서 너무나 많이 사용된 소재다보니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 시작할 때부터 결말을 이미 알고 들어가게 된다. 물론 역사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선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부분다. 하지만 사람의 '관상'만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나라의 녹을 먹으며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려는 관리를 한 번 보고 알아내며, 역적이 될 상인지 아닌지, 죽은 시체와 남편의 상만 보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정도의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관상가가 주인공이라면 역사적인 흐름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풀어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서의 눈에 들어 왕위를 노리는 세력이 누구인지 관상만 보고 알아내야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수양대군을 알아보지 못하고 한명회를 알아보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며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에 대해 관객이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며 보게 만드는 '맛'이 있어야 했는데,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보니 이런 '맛'이 살지 않았다. 작년에 출시했던 < 광해, 왕이 된 남자 >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라고나 할까.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역사를 기반한 픽션이었지만 관객에게 만족감을 준 영화라면 < 관상 >은 역사적인 사실을 놓지 않고 전개하다보니 관상가의 마술과 같은 능력조차도 처음엔 신기하지만 나중엔 그저 그런 능력으로 보이게 만드는 설정이 되어버렸다.
4. 아쉬운 점은 많지만
열에 아홉은 꿰뚫어 보는 천재 관상가이면서도 수양대군과 한명회, 단종, 김종서의 관상을 100%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생긴 구멍 때문에 이 영화는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이 된다. 하지만 기본 설정에 맞춰서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캐릭터 설정처럼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재 관상가였다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르게 진행되고 결론이 났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떤 설정인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배우 이름만으로 기대감을 안고 관람했던 영화라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평이 전체적으로 단점에 치우쳐져버렸지만, 영화 < 관상 >은 혼자 가든 누군가와 같이 가든 나오면서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이 본 여친님이나 친한 동생이 얘기했던 것처럼 '기승전까지 갔다가 결은 없고 다시 기승, 기승전.. 이런식으로 반복되어 처음엔 재밌다가 중간부터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 이기도 하고, '배우만 보고 기대하고 들어갔다가는 아쉬움이 많이 영화' 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딱히 욕하고 나올만큼 '나쁘지는 않은 영화' 라고 생각한다. 분명 송강호와 다른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어느 한 장면 버릴 곳이 없을 정도로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 관상 > 에 대한 이미지를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이렇다.
"사귄지 얼마 안된 연인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영화를 쏘겠다고 데려갔다가 중간 즈음부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혹 지루해하진 않는지, 영화를 보다 실망해서 나와 함께하는 139분을 아까워하진 않을지 눈치를 한 두 번 보게 만드는 그런 영화"
영화 < 관상 >은 추석 연휴와 맞물려 굉장히 많은 관객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천만 관객까지는 힘들 것 같은 영화이다.
評 하늘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