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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하늘다래 2013. 5. 12. 13:22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유시민은 당황을 했다고 한다. 보통 그런 주제의 책을 내려면 성공적인 삶을 살았거나 고매한 인품을 인정받은 사람이라야 쓸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옳다는 증거도 없는 '공자님 말씀' 비슷한 것을 따분하게 늘어놓게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생이나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다른 저자들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 다른 이야기 풀이 방식을 썼을텐데, 그게 뭘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동일한 책 제목을 이미 냈던 밴드 '크라잉 넛'에 대한 이야기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두환 신군부의 퇴진과 즉각적인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그 시절,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을 맡았던 그는 계엄군에 잡혀 고생을 했던 기억을 담담히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 크라잉넛 멤버들이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왜?

펑크록 밴드 멤버가 대학 총학생회 간부도다 더 훌륭한건가? 펑크록 공연이 민주화투쟁보다 아름답다는 이야기일까? 빈 맥주 캔 더미에 다이빙을 하는 게 교도소 0.7평 독방에서 혼자 요가를 하는 것보다 숭고하다는 것일까?

유시민은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고 그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공연을 하면 행복했기에,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노래와 연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한 청년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간단했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도 못했다.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위로'가 힘이 될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며 '위로'에 대해 가장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이 한때 크게 유행했다. 이 말을 만든 원래 의도는 '고용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분 삼아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 일자리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판하는 것이었다. 이 신조어 창안자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부모세대인 소위 '유신세대'와 '386세대'가 배려하고 양보하라고 촉구했다.  

-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세대', 레디앙, 2007.
 
이것은 열심히 '스펙'을 쌓고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을 졸업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다. '네가 겪는 고통은 네 책임이 아니다.' 그렇게 들린다. 사실이다. 취업난은 청년들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위로를 받으면 열패감이 덜어진다. 그렇지만 위로의 힘은 거기까지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p52


위로라는 것은 열패감, 열등감을 조금은 덜어줄 지언정, 아픔을 대신해주거나 아픔을 견디는 능력을 전수해주거나 상속해줄 수는 없다. 자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며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임이든 사회의 책임이든, 닥쳐온 고통은 일단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고, 누구도 그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사회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시련'을 견디는건 '세대'가 아니라 청년들 각자이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본문 중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제목과는 다르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 좋은 삶을 살고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며 좋은 삶, 성공하는 인생에만 관심을 두고 살았다. 하지만 잘 죽는 법을 알고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데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아직 죽음에 대해 생각할 만한 나이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만한 사건들 중, 심장 수술을 하기 전과 이후의 삶에 대한 자세와 생각이 가장 크게 변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대 후반에 겪은 이 사건으로 인해 삶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나도 모르게 인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나는 준비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한 고민을 오늘부터 하나씩 해볼 예정이다.

생전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던 분이 주무시다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우리 할머니도 아프긴 하셨지만, 주무시다가 죽음을 맞이하셨다. 사고가 생기거나 병원에서 삶을 연장해주는 호스들을 꽂고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 또한 호상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힘든 죽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것이지, 진정한 호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시민이 이야기하는 것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기회조차 없이 떠난다면 큰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가족, 친지, 친구들, 그 외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정리하고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의 표현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예금 통장을 며느리 손에 지어줘야 하며, 상속해줄 유산은 자식들이 다투지 않게 잘 나눠줘야 하고... 살면서 해야 하는 일만큼이나 죽음은 내 인생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이런 정리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쓰다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을 더 귀하게 느끼게 된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책이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이는 죽음.. 이런 것을 위해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너무나 많다. 모든 나무와 모든 벽을 오르고 넘어서야 행복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게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삶의 기쁨과 존엄은 무엇을 통해 실현되는지를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자유와 공동선, 진보와 보수, 신념과 관용, 욕망과 품격, 사랑과 책임, 열정과 재능 등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을 유시민만의 균형잡힌 시각으로 날카롭게 해석해 내고 있다. 인생의 기쁨과 아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짚어내며 우리가 가장 듣고 싶어 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다루고 있으며, 철학을 다룬 서적, 자기계발 서적들 중 무겁고 보기 힘든 내용을 담은 도서들도 있으나 이 도서는 유시민의 삶을 일기를 쓰듯 서술해둔 에세이 형태라 읽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던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자 하는 분들,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부정적이었던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는 분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 번쯤 읽어보길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