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는 여자, 서평

문화 바라보기/도서 바라보기


              [공지]연극 [스캔들] 초대이벤트! 진행中! (~5/29 까지)
              [공지]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 초대이벤트! 진행中! (~6/4 까지)

시간을 담는 여자, 서평


직장 생활을 하며 매일 사진 찍고 매일 글을 쓰며 가장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잠이다. 잠을 충분히 못자서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루 네 시간이라도 자야 한다는 것이 나에겐 굉장히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을 받게 해 잠을 더 줄이지 못하는데서 오는 부족함과 갈증이 매우 크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담는 여자>는 첫 페이지부터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듯한 설정을 담은 소설이었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궁금함에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시간을 정말 팔 수 있다면?"

<시간을 담는 여자>의 작가 소개 페이지 두 번째 문단의 첫 문장이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건강에 이상 없으면서 잠 안 잘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낸다면 내가 평생 구입하겠다." 라고 할 정도로 나는 잠 자는 시간이 세상에서 젤 아까운 시간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굉잫안 흡입력을 가진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가 김영리는 '시간은 돈이다' 라는 뻔한 명제에서 '시간을 정말 팔 수 있다면?' 이라는 의문을 갖고, <시간을 담는 여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동갑내기인 작가의 책은 사실 처음 봐서 왠지 모를 반가움도 있었지만, 내가 항상 갖고 있는 의문을 가진 작가가 있다는 사실도 굉장히 반가웠다.

"매일 잠으로 흘려보내는 아까운 시간에 차라리 돈이라도 벌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을 담는 여자>는 킬링타임모텔이라는 다 쓰러져가는 음침한 분위기의 모텔이 주요 무대이다. 다른 사람의 잠을 돈을 주고 구입해 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다시금 판매한다는 컨셉으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점점 독특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킬링타임모텔의 주인인 시연은 601호에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고 있다. 겉으론 평범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듯 하지만, 601호에서는 바깥 세상의 사람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모텔에서 일하고 있는 쏘반은 601호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직원으로 취직한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벌어진 일들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십 년째 무직인 사십대 가장 구만석은 집안에서 숨소리 한 번 크게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사업으로 집안이 번창하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아내의 잔소리와 며느리에게 조차 무시당하는 자신의 아버지.. 그런 집안에서 늘 눈치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아들.. 만석의 집안은 행복이라곤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집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남아도는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온 그에게 킬링타임모텔 지배인 임시연이 나타난다.

"잠자는 동안 그쪽 시간을 제게 주세요. 그럼 전 그걸 나중에 필요한 고객에게 연결해주는 거죠."
24시간에 100만 원.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믿어봐서 손해 볼 것도 없다. 텔레비전 볼 수도 없고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없으며 사랑을 나눌 수도 없는 게 바로 잠자는 시간인데.. 그런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고? 그렇게 편하게?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24시간동안 자고 일어나 현금으로 받은 100만원을 본 그는 점점 생각과 삶이 변해간다. 어디서 벌어오는지 모르지만, 돈을 가져다주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뒤를 밟다가 모텔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모텔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정확하게는 시연과 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 또한 잠을 자고 시간을 팔면 돈을 준다는 시연의 말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잠을 자게 되고 이야기는 점점 가파르게 전개된다.

어릴 적부터 시간 연구에만 미친 아버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시연은 그토록 원망스럽던 아버지의 시간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다. 잉여 인간들의 시간을 모아서 천재들에게 되파는 것.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아버지의 소망이지만 과연 아버지의 소망은 옳은 것일까? 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가던 시연은 끝없는 의문에 빠지게 되고,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시간 비용을 지급하지만, 점점 돈이 부족해 대출과 사채까지 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사고 판다는 다소 판타지적인 내용을 담아 전개되지만, 시간을 사고 팔 수 있고 큰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을 잃지 않고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전개와는 조금 달랐고, 설정도 조금 달라 원하는 해답을 '당연히' 얻을 순 없었지만,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두운 면모에 대해선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스토리 전개나 책에 담긴 주제를 풀어나가기엔 한 권으로 끝내기가 다소 아쉬운 분량이었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스토리라인을 잡았지만, 중후반부터 이야기가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갑자기 끝이나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스타일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도 들었다. 작가가 2권으로 만들 생각으로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용을 만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

그래도 나처럼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시간을 담는 여자>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評 하늘다래

시간을 담는 여자 - 8점
김영리 지음/새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